[짘경] I need some sleep

2020. 5. 12. 01:28 from 글/단편

이제는 익숙한 새벽 귀가. 촬영하는 것이 재미있고 보람되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유독 힘들었던 오늘의 문제에 머리를 허용 과다 사용한 탓에 유독 지쳤다. 씻는 것도 생략하고 바로 침대에 쓰러지고 싶었지만 푹 자고 일어났을 때 상쾌함을 느끼고 싶어 자꾸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비틀비틀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머리가 맑아진다. 산뜻한 느낌과 적당히 따끈따끈 데워진 몸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포근한 침대에 몸을 눕히고 단잠에 빠질 생각을 하니 침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차피 끌 불이니 어두운 방을 밝히지 않고 곧장 침대에 몸을 던졌다.

"... 으억!!"
"으악!!"

분명 푹신한 매트리스의 탄력이 느껴져야 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엄청나게 딱딱한 것과 몸이 충동했다. 뾰족하고 단단하기도 한 이상한 것이 나와 부딪치자 억눌린 신음을 뱉었고, 나는 아픈 것도 잊고 재빨리 일어서 방 불 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팟, 순간 켜지는 밝은 빛에 잠시 눈을 찡그렸다가 침대를 주시하니 있었다. 커다란 우지호가.

길쭉한 몸을 구부정하게 말고, 나와 부딪친 곳을 쓱쓱 문지르는데 얼굴을 찡그린 채 여전히 눈은 감고 있다. 벌렁벌렁 달음질치는 심장을 손으로 눌러 진정시키고 있을 때 제 몸을 문지르던 지호의 손이 느려지다가 이내 그대로 멈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보니 지호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있다. 놀란 가슴이 진정 될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이 자식 왜 여기 있어? 집 있다, 작업실 있겠다. 잘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이래?

조금 전까지 달콤하게 잠에 빠질 기대에 차 있던 탓인지 생각이 까칠하게 튀었다. 나는 졸리고 자야 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침대에 누워있는 우지호는 커다란 방해물에 불과했다. 요령도 좋게도 1인용 침대에 틈 없이 대자로 자는 지호를 가만히 노려보다 팔을 잡고 꾹꾹 옆으로 밀어본다. 좀 밀리는가 싶더니 몸을 뒤척거리며 원상복귀해 버린다. 꼼짝하지 않는 지호를 두고 거실 소파에서 잘까 하다가도 내가 왜 내 침대를 두고 불편한 소파에서 자야 하느냐는 생각에 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다. 오늘치의 뇌 쓰기는 이미 고갈됐고 수면 부족으로 인한 인내심 수치는 이미 바닥이었다.

약간의 틈이 있는 침대 옆에 일단 걸터앉아 지호를 온몸으로 밀어본다. 팔로만 밀었을 때 보다는 조금 더 잘 밀려서 겨우 옆으로 누울 공간이 생겼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벌렁 몸을 누웠다. 좁아서 불편했지만, 드디어 잘 수 있다는 기쁨이 더 먼저였다.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덮으니 의식이 서서히 멀어지는 감각이 들었다.
내일 녀석 때문에 못 잔만큼 괴롭혀야지 하는 다짐을 생각할 때였다. 가라앉고 있는 의식을 머리채 잡는 감각에 나는 뻑뻑한 눈을 번쩍 떴다. 익숙한 듯 낯선 느낌에 고개를 내려다보니 이불 속 내 허리를 단단한 팔이 감고 있었다. 이렇다 할 틈도 없이 자신의 품 안에 조금의 틈도 없이 나를 가두는 지호의 행동이 이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잠깐 멈춰있는데, 목덜미에 닿는 일정한 숨결이 느껴졌다. 지호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나는 모든게 잠결에 한 행동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놀란 건 순간이었고, 이미 정신만 두고 몸이 잠든 것 같이 버둥거릴 힘도 없었던 나는 생각을 이어갈 힘도 없이 그대로 잠에 빠져버렸다.



누군가 깨워서 일어난 게 아니라 저절로 눈이 떠졌다. 몸이 충분히 자서 이제 그만 일어나라는 느낌은 꽤 상쾌했다. 푹 자서 부은 눈을 손으로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뒤늦게 배를 가로지르는 팔에 몸이 걸렸다. 그제야 어제 새벽의 일이 떠오른다. 휙 고개를 돌려 지호를 내려다보니 여전히 잠을 자는 것이 보였다. 녀석을 흘겨보다가 나를 안고 있는 팔을 맵게 한번 찰싹 때렸다.

"아야?!"

이번엔 단번에 눈을 뜬 지호는 맞은 곳을 문지른다.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가 갑자기 맞아서 억울한 표정이 된 지호가 괘씸해서 입을 꾹 다물고 노려봤다.

"왜..."

투정부리는 녀석의 눈도 나와 같이 퉁퉁 부어있는 걸 봐서 마찬가지로 푹 잔 모양이었다.

"아주 푹 주무셨나 봐, 우지호 리더님?"
"뭔데... 그 말투..."
"뭐긴 뭐야. 너 지금 여기가 어디로 보여?!"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뒤늦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지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네 방이잖아."
"그런 거 말고."
"... 숙소?"
"아, 우지호 짜증나! 너가 왜 여기서 자냐고?!"

비로소 지호가 아아, 하고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뒤따르는 별다른 말이 없어서 나는 답답한 마음에 얼굴을 찡그렸다. 뒤늦게 자느라 부스스해진 뒷머리를 손으로 벅벅 긁던 지호는 내 눈치는 보며 작게 답했다.

"잠이...안와서..."
"뭐?"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어. 잠들어도 금방 깨고 그러더라고. 너 안고 자면 잘 자니까 그러려고 왔는데, 네가 없더라."

녀석이 내 눈치를 보며 중얼중얼 늘어놓는 말에 순간 짜증을 냈던 모든 것이 민망해졌다. 순식간에 뺨이 화끈거린다.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누르며 지호의 눈치를 보게 된다.

"생각해보니까 너 녹화하는 날이라 금방 오겠지 하고 누웠는데 그대로 기절했어."
"맞아, 잘만 자던데...?"

새벽의 일이 떠오른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다행히 내가 녀석의 위로 몸을 던졌다는 걸 기억 못 하는 모양이었다. 내 물음에 지호는 쑥스럽게 웃어버린다.

"침대에서 온통 네 냄새 나서 그런가 봐."

히히, 쑥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자 나는 나도 모르게 따라 웃어버렸다. 뒤늦게 잠을 못 잤다는 녀석이 안쓰러워서 쓱쓱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길을 얌전히 받아내던 지호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챈다. 돌발 행동에 어리둥절한 사이 지호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늘 다른 일 있어?"
"어? 아니. 별일 없는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은 씩 웃는다. 그리고 나를 잡아 일으키더니 요령 좋게도 한 손으로 소지품과 재킷을 챙겼다. 막무가내로 끌려가다 보니 어느새 집 밖까지 나와버린 나는 영문모르게 이미 우지호의 차에 타 있었다.

"야 나 잠옷에 슬리퍼 신고 있는데 어디가?"
"우리 집 가서 잘 거니까 괜찮아."

기분 좋은 모양인지 신나게 차를 출발시키는 지호를 나는 이상하게 바라봤다.

"더 자게? 난 안 졸려."
"그거 말고."

음흉한 녀석의 말투와 수작 가득한 미소를 보고 나서야 지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의 팔을 찰싹찰싹 때려봤지만, 녀석은 웃으며 몸을 약간 비틀어 피할 뿐, 차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별수 없이 차 시트에 몸을 기대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힐끔 나를 본 녀석이 아하하, 정말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로 웃는다. 어이없게도 그게 또 귀엽게 느껴진 나는 고개를 돌리고 몰래 따라 웃어 버렸다.



끝.

Posted by Cake_z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