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단편

[짘경] 보통날

Cake_zk 2020. 5. 12. 01:34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훌쩍 지나있었다. 어제 늦게 잠들었으니 어쩔 수 없지... 부스스 일어나 나가려다가 슬쩍 옆자리를 바라봤다. 세상모르게 잠이든 경의 모습에 슬쩍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곤히 잠든 얼굴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다. 행여 깰까봐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오니 언제부터 내렸을지 모를 비가 한창이다. 창문을 조금 열었더니 물기 가득한 비 냄새가 훅 끼쳤다. 바람 방향 때문에 비가 들이치지는 않았지만 가끔 한 두 방울이 투명한 창을 때린다. 멍하게 그 소리와 모습을 보다가 창을 닫았다.


씻고 나와 커피를 마실 때까지 침실은 고요하다. 시간을 확인하자 초조해지는 마음에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슬슬 작업실을 가야하는데... 그냥 두고 갔다가 호되게 후폭풍을 치른 적이 있어서 이번에 또 그럴 수는 없었다. 또 한편으로 자는데 건드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괜히 침실 앞을 서성거렸다.

"...지호야."

불현듯 들리는 음성에 침실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누워서 잠을 떨쳐내려는 듯 섬세함 없는 손길로 제 눈가를 비비는 경을 지나쳐 굳게 닫힌 커튼을 조금 거둬냈다. 어두운 방안이 밝게 변하자 눈이 부신 모양인지 눈을 비비던 손 그대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이불과 반쯤 섞인 모양으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지호야 나도 커피..."

손에 든 커피에서 향이 퍼졌나보다. 몸을 웅크린 채 한손만 뻗어 커피를 요구하는 경을 보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마시고 싶으면 새로 내려줄게."

내 말에 경은 여전히 감은 눈을 하고 고개를 젓는다.

"그냥 너 마시던 거 한모금만 줘..."
"줄 수는 있는데, 일단 일어나야지."

잠시 생각하듯 멈춰있던 몸은 바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퉁퉁 부어버린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 여전히 잘 뜨지 못하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 일할 때 한껏 꾸민 모습도 좋지만 나에겐 이런 모습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에게 건네받은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나서야 두 눈을 전부 뜬 경은 나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발로 내 다리를 찼다.

"아야!! 뭔데?"

그다지 세게 찬 건 아니라서 아프진 않았지만 갑작스레 얻어맞은 터라 억울했다.
아니 내 커피도 줬더니?

"너 작업실 갈 거지?"
"응."
"나갈 준비 했길래. 그럴 줄 알았다."

그러고 커피를 홀짝거리는 경을 보자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잊어버렸다. 괜히 푸시시한 머리를 손으로 쓱쓱 빗겨주었다.

"어차피 기다렸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왜?"
"나도 갈 거야."

비어버린 컵을 건네주어서 받아들며 되물었다.

"박경, 진짜야?"

내 반응에 비실비실 걸어가던 경이 휙 돌아본다.

"세상에서 자기만 일하는 줄 알지."
"너 진짜로 작업실 잘 안 오잖아."
"이게... 덜 맞았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때리려고 다가오기에 하하하 웃으며 요령 있게 피해본다. 결국 제대로 때리지 못하고 못마땅한 얼굴로 욕실로 향하는 경을 보다가 침구를 정리했다.


씻고 나온 경에게 미리 꺼내놓은 옷을 건네자 그 자리에서 갈아입으려고 하기에 도로 빼앗았다. 어리둥절한 경을 데리고 가 머리를 말려주니 얌전히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보송하게 마른 머리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다 그제야 옷을 건네주었다.

얼추 준비가 끝나고 나가려는데 경이 뒤늦게 창을 보고 놀라 다가간다.

"어? 비 내려?"
"응, 나 일어났을 때도 왔어."
"뭐야, 나가기 싫다."
"아이구? 핑계도 많다."

툴툴거리는 경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겨우 현관 밖으로 내보냈다. 마지막으로 차키를 챙겨 문을 닫는데 코 속으로 훅 끼치는 경의 잔향에 손이 멈췄다.

내 집에 남은 경의 향이 좋아서 잠시 멈춰 있다가 그것이 모두 밖으로 달아날까 서둘러 닫았다. 다시 돌아 왔을 때까지 얌전히 남아있기를 속으로 바래본다.

이미 엘리베이터를 탄 경이 안가냐며 재촉하고 있었고, 나는 서둘러 그에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