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단편

콩깍지

Cake_zk 2024. 8. 13. 03:34



비흡자가 흡연자와 키스하면 딱 한마디로 표현 된다고 한다. '재떨이맛' 근데 사실 정정하자면 흡연자끼리도 그렇다고 한다. 자신이 태운 담배 외엔 불쾌하다나고 그랬나. 철저히 비흡연자에 속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게 뭔짓거리인가 싶지만.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유를 따라가자면 오래된 내 연인은 흡연자다. 그럼에도 조금 전처럼 추측만 가능한건 이런 부분은 의외로 철저했기 때문이다. 담배를 태우고 나면 화장실부터 포르르 달려가 손부터 양치질 혹은 가글까지 완벽하게 끝내놓기전까진 근처도 못오게한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볼 꼴 못 볼꼴 다 본 사이 인데. 평소에는 독한 술과 안주로 입냄새가 엉망이 된 상태로 오히려 키스 해달라고 끈질기게 달라붙기도 한다. 취해서 그런다고 하기엔 그다지 취하지 않는 날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일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보다.

방금전에도 신나게 놀다가 잠시 한대 태우고 오겠다고 베란다에 나간 상태이다. 봄이지만 해 떨어진 밤이고 바로 전까진 비도 내렸다. 그런데 실내복을 입고 그냥 나가려고 하기에 잠시 붙잡아두고 서둘러 가볍게 걸칠것을 어깨에 둘러주었다. 냄새 밴다고 질겁하면서 벗으려는걸 못 벗게 두 어깨를 꽉잡고 베란다 밖으로 내보냈다. 탁 소리 나게 베란다 창문을 닫자 툴툴거리는 입모양이 보이고 들리지않아도 대충 뭐라고 하는지 짐작이 갔다.  그래도 춥긴 한건지 입혀준 겉옷은 벗으려는 움직임은 없다. 그리고 베란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최대한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다. 추위를 어마어마하게 싫어하면서 그럴꺼면 끊으면 되지 않을까 하다 그 생각을 털어낸다. 물론 몸을 생각하면 끊으라고 하는게 맞지만, 어차피 내가 박경을 이길 자신이 없다.

*

이제 다 태운 모양인지 나를 바라보며 유리문을 똑똑 두드린다. 자동으로 잠기는 문을 열어주려 성큼 걸어가다 우뚝 멈춰 섰다. 문을 열어주면 버릇처럼 빠르게 냄새를 제거하려 뛰어가듯 화장실로 향할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전 든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칠것이다. 어떻게 할까. 머리를 조금 굴리느라 움직이지 않고 경의 얼굴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는데, 동그란 눈매가 점점 뾰족해진다. 아차, 추울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보란듯이 씨익 미소를 보여주자 처음엔 오해였을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경이 가늘고 긴 손가락까지 동원하며 아주 화려한 욕 퍼레이드가 열린다.

잠시 그것을 즐기듯 바라보다가 화려함이 옆집까지 넘어가기 전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경은 다시 문이 닫힐라 미쳐 다 열리기도 전 후다닥 제 몸부터 밀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내게 미처 전달 되지않은 화와 욕을 재장착 중이였다. 그때 조금 전보다 더욱 환하게 웃으며 경의 두 팔을 꽉 붙들었다. 그제야 경이 위험을 감지한듯 몸을 슬쩍 뒤로 빼보려한다. 그렇지만 등에 닫은 차가운 유리벽에 얼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우죠, 너, 뭐..."

빠른 동작으로 붙들고 있던 손 하나를 움직여 경의 목덜미를 감쌌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퍼레이드를 입술로 막아낸다. 약 3초간 놀라 굳었던 경이 상황 파악을 끝내고 내 품을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그럴수록 붙들고 있는 손이 더욱 센 힘이 들어간다. 경의 입안에 내 혀가 닿지않는 곳이 없게 그리고 이제는 어떤 움직임을 좋아하는지 모를수 없는 키스가 이어진다.

어느정도 만족스럽자 붙들고 있는 힘이 느슨해진다. 경이는 그것을 놓치지않고 밀어낸다. 언제 그랬냐는듯 쉽게 밀쳐지는 모습에 경의 눈이 다시 뾰족해진다. 하지만 상기된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야!! 나 지금 담배 !!"
"알아."

버럭 소리치며 한다는 말이 예상 범위라서 즉답을 해버리니 큰 입이 합 다물어진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덤덤한 나를 바라보는 큰 눈이 도륵 바쁘게 구른다. 자신에게서 나고 있을 냄새도 신경쓰이고 그걸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추측하느라 머리가 야단스럽다.

한편, 내가 원하던 궁금증을 체험해본 결과에 나도 좀 당황스럽다. 후각에서는 분명 밖에서 태웠을 담배의 냄새가 느껴진다. 그것이 입고 있던 옷에서 나는 걸수도 있고, 처음 호기심처럼 입안에서 나는 걸수도 있다. 그것이 비흡연자로서 유쾌한 냄새는 아니다. 입안도 상큼한건 아니고 살짝 텁텁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혹자가 말한 것엔 동감할 순 없다. 분명 불쾌한 감각이긴 하지만 사람은 동시에 여러가지 감각을 느낄수는 없다고 한다. 나는 다른 감각이 좀더 강하게 느껴져서인지 극단적으로 말하는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 남아있던 거북한 감각마저도 안절부절 못하는 경의 얼굴을 보자 빠르게 휘발 되버리고 말았다.

이런 나를 냉정하게 보자면 여전히 한사람 한정 내 눈에는 콩깍지가 아주 단단했다. 단단하기만한게 아니라 아주 두꺼운 모양이다. 왠만한 것에는 꿈쩍도 안하는거 보니.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불안하게 떨리는 눈가에 한 번, 살짝 벌어진 입술이 가볍게 한 번 입을 맞추고 파하하 크게 웃으며 다시 품 안에 가득 경이를 안았다. 그러데 별안간 발등이 뜨겁게 느껴질도록 강한 타격감에 나는 그대로 바닥에 데굴 구르고야 말았다.

"개자식아, 장난 좀 그만쳐!!"

씩씩거리며 버럭 소리를 지른 경이 바닥에 나뒹구는 나를 두고 사라진다. 경이 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가버렸지만 여전히 봄처럼 붉게 피어난 뺨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손바닥으로 밟힌 발등을 몇 번 문지르고 일어섰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리는거보니 경이 세수든 양치든 시작한 모양이다. 두 뺨에 차가운 물의 온도가 옮겨가 기껏 달아오른 열기가 사라지기 전에 키스나 더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