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단편

[리퀘] 인간짘×뱀파이어경

Cake_zk 2020. 5. 26. 01:51

푹신한 소파가 경의 온몸을 편안하게 받쳐주며,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닿는 촉감도 최상의 것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가 늘 유지되고 있는 공간에 그가 혹여 심심할까 게임기며 스마트폰이며 손이 닿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경은 그 모든게 불만인양 내내 뒷통수만 보이는 지호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우지호."

"응."


대답은 재깍재깍하지만 저 고개가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경의 인내심은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경은 한참만에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벼운 발은 소리도 없이 지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지호는 슬쩍 경이 있는 곳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린다.


"다가오지 말라고. 거의 끝나가."


저 소리만 2시간 째다. 조금 전엔 통했었어도 인내심이 떨어진 경에게는 이제 통하지 않을 말이였다. 포르르 다가간 경은 그가 앉은 의자 등받이 너머 지호의 양 어깨 위에 자신의 두 팔을 올린다.


"아까도 끝나간다고 했잖아."

"조금만 더. 진짜 얼마 안남았어."

"나 배고파..."


최대한 불쌍한 얼굴과 목소리로 지호에게 애원해보지만 지호는 손을 들어 경의 얼굴을 달래듯 톡톡 두드릴 뿐이었다.


"일단 저거 먹으면 되잖아."

"아 저거 싫어!!"


진짜 싫은 모양인지 경이 히잉 울음섞인 투정을 뱉었다. 한숨을 길게 쉰 지호가 드디어 몸을 경의 쪽으로 돌렸다. 의자가 돌아가자 경은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킨다. 온전하게 지호의 몸이 자신에게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 앉는다. 팔까지 뻗어 지호의 목에 매달리자, 그는 익숙한듯 양손으로 경의 몸을 받쳐준다.


"어차피 똑같은 거잖아. 저건 왜 싫은데."


그 말에 경은 지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조금전까지 자신이 있단 소파 옆 테이블.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붉은 액체를 담고 있는 비닐팩 여러 개.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경은 다시 지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건 네것이 아니잖아."

"하나는 내거인데?"

"그건..."


잘도 말을 하다 순간 말문이 막힌 경은 우물쭈물 시선을 돌린다. 차분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던 지호는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경의 턱을 가볍게 붙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돌렸다. 본래 눈이 날카로워 현재의 기분과 상관없이 오해를 사는 편이지만 지금은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맞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뤄 보아 온전히 자신을 담아내지 않는 시선이 불만 일것이 뻔했다. 조금 전 몇시간이나 경을 외면하고 있던 일은 생각해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럴때마다 경은 본래 자유로운 자신보다 지호가 더 제멋대로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두사람의 눈이 마주보자 비로소 기분이 좋아진 지호는 한결 풀린 표정으로 대답을 재촉하는 듯이 눈썹을 한번 쓱 들어올렸다. 


"...직접 먹어야 한번이라도 더 붙어 있을거 아냐."


잠시후 주저하다 나온 경의 대답이 지호에게 썩 마음에 든것이 틀림없었다. 날카로운 얼굴 위로 만족스런 미소가 사르르 퍼져나갔기에. 온도차가 분명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스스로 제법 뻔뻔한 성격이라 살아오던 경의 얼굴에 손쉽게 수줍음이 스며들었다. 

 

"이리와."


두사람은 이미 가까이 붙어 있기에 남이 들었다면 의아해 했을 말도 경은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웃었다. 경이 다가오기 쉽게 고개를 한쪽으로 꺾어 자신의 목을 내어준다. 그의 움직임을 만족으럽게 보고 있던 경은 익숙한 동작으로 지호의 목을 깨물었다. 날카로운 통각과 함께 비릿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셀수도 없이 많이 겪어본 일이지만 지호에게는 언제나 생경하면서도 묘한 자극으로 느껴졌다. 상처가 난 곳부터 자신의 피가 흘러 나가자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이 공포심보다 앞선 쾌락이 머릿속을 뒤 흔들었다. 


만족한듯 떨어지는 경을 황급히 붙잡고 눈을 마주한다. 흡혈할때만 드러나는 붉은 눈동자가 마치 보석처럼 느껴졌다. 지호는 허겁지겁 경의 뒤통수를 끌어 당기며, 짙게 입을 맞추었다. 아직 다 들어가지 않은 날카로운 송곳니가 혀를 아프지않게 긁었다. 자신의 피가 틀림없을 비릿한 맛이 지호를 더욱 다급하게 만들었다.


조금전까지 일에 열중하고 있던 테이블 위로 경을 거칠게 눕혔다. 다음 행동을 모르진 않았을텐데 경은 순수한 얼굴로 지호를 올려다 보았다. 


"...일은?"

"너, 나쁘네."


이런 상황에서 뻔뻔하게 일에 대한 것을 물어오는 경의 표정이 순진하다. 그런 경을 나쁘다 말하는 지호의 말투는 한껏 즐겁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