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짘경] shall we dance - 3
모두가 왁작거리며 시끄럽고 정신 없는 술자리. 너른 공터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밤의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빠질리 없었던 경은 이미 일찍 자리를 잡고 한바탕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는 만큼 술이 사라져 갈때쯤 누군가 술에 취해 소파에 늘어져 있던 경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경, 리더는 잘합니까?"
순간 큰소리 울리는 음악소리만 가득 할 뿐, 조금전까지 서로 떠들던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것 마냥 말소리가 자취를 감추었다. 경에게 질문을 한 그 누군가 조차 옆에 있던 다른 사람에 의해 입을 손으로 틀어막혔다. 소리 없는 아수라장에서 경은 그저 큰 눈을 끔뻑 거릴뿐 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경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생각에 빠지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며 그의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경은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자본 사람이 알겠지."
살짝 짜증나는 얼굴로 대답한 경은 손에 들고 있던 병 안 약간 남은 술을 한번에 입안에 털어넣는다. 경의 대답에 더이상 조용할 것도 없던 사람들은 이번엔 숨마져 삼켜버린 듯 작은 소리 하나도 없어졌다. 술도 떨어졌고, 적당히 취기가 오른 경은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간다. 더 놀려면 알아서들 놀고."
비틀비틀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경을 한참 보던 무리들은 온전히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간 참고있던 것들을 쏟아내듯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냈다. 제대로 된 건물은 아니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잘 들리지않았다.
술에 취해 흔들리는 몸으로도 계단을 빙글빙글 잘도 올라간 경이 결국 도착한 곳은 지코의 아지트 앞이였다.
"주정뱅이 왜 왔냐."
흔들흔들 걸어오는 폼부터 알콜향이 나는 경을 보고 지코가 피식 웃는다. 경은 주변을 휙휙 돌아보다 고개를 갸웃 한다.
"그러게, 나 왜 왔지."
건너가기만 하면 경의 아지트라서 가면 될텐데 경은 잠시 그대로 서있었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지코와 술을 좋아하는 경은 이런 날이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언제부터의 버릇인지 모르지만 매번 그의 방에 들리는 경과 왜 왔냐고 물어보는 지코. 그래서 지코는 경이 술자리에 참석하고 있을때마다 먼저 잠드는 일 없이 책을 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럴때마다 매번 잠시 생각하다 돌아가는 경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아 맞아. 나 물어볼거 있어!"
"으응? 뭔데?"
손뼉까지 짝 치면서 말하는 경을 지코는 신기하게 바라봤다. 단순한 술주정이 아닌가? 지코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경은 아지트 안에 놓인 소파에 털썩 앉았다.
"뭐냐며언..."
늘어지는 말꼬리가 영 수상했지만 지코는 자주있는 상황은 아니라 경에게 다가가 가까이 앉는다. 눈을 두어번 깜빡이던 경은 가까워진 지코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야, 너 잘해?"
"뭘?"
"섹스."
경이 우물거리며 말한 단어가 순간 이해되지 않은 지코는 잠시 일시정지 했고 경은 눈만 깜빡이며 대답을 기다린다.
"...뭐라고?"
"아 잘하냐고!"
"그건 왜 물어!"
"누가 무러봐써!!"
단박에 대답 해주지 않는 지코가 마음에 들지않는 듯 꼬이는 발음으로 버럭하는 경과 갑작스럽게 들어온 사생활 이야기에 당황하여 함께 버럭하는 지코.
"누가 물어본다 해도 그걸 내가 대답해줘야해? 네가 궁금한것도 아니면서!"
"나도 궁금하니까 무러보지!"
화를 내면서도 점점 발음이 뭉게지는 경은 단번에 힘을 터트리듯 버럭한 뒤에 쓰러지듯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소파에 늘어져 잠든 경을 보며 지코는 황당함과 어이없음 그리고 약간의 화를 참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경의 말이 유난히 신경쓰이는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
다음날 눈을 뜬 경은 왜 자신이 지코의 아지트 안 소파에서 불편하게 잠든지 알수 없었다. 아침부터 어딜간 모양인지 방안에 없는 지코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경은 누워있던 소파에 도로 누웠다. 머리를 흔드는 거친 울림에 경은 불편하다 소리 지르는듯이 삐그덕 거리는 몸을 무시하기로 했다. 한참을 뒹굴거리고 있자 뒤늦게 지코가 나타났다.
"아침부터 어딜 다녀와?"
"지금이 아침이냐?"
소파에서 몸도 일으키지않고 말을 건내는 경을 지코는 한심하다는 듯 받아쳤다.
"내가 눈뜨면 아침이고 눈 감으면 밤이지."
뻔뻔한 경의 말투에 지코가 큭큭 웃어버렸다. 그러고 난 뒤 손에 들고 있는 봉투를 경에게 건냈다. 지코가 건내주는대로 경이 얼떨결에 받아 열어보니 아직 따뜻한 미트파이였다. 파이와 지코를 번갈아보는 경의 입가엔 벌써 미소가 가득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경에게 지코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이다. 망설임없이 파이를 꺼내문 경은 익숙한 맛있음에 행복 가득한 얼굴이었다. 우물거리며 파이의 절반쯤 먹어치웠을때야 경은 지코의 복장이 평소와 다름을 눈치챘다.
"일 있었어?"
"응. 그럼 그걸 어디서 구했겠냐."
경의 옆자리에 털썩 앉은 지코가 입은 검은 옷 끝을 툭툭 턴다. 입 안 가득 파이를 우물거리던 경은 평소 자신이 먹던 것과는 조금 다른점을 눈치챘다.
"오늘은 치즈가 많네."
해장하라고 특별히 주문한 모양이었다. 경은 이 커다란 곳을 통솔하는 리더씩이나 되면서, 섬세하게 메뉴를 고르고 주문했을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났다. 야무지게 먹고 있눈 경의 모습을 보던 지호가 옆자리에 앉았다.
"너 어제 과음했는데... 기억 하나도 안나지?"
지코의 말에 파이를 양손에 잡고 먹고있던 경의 눈이 이리저리 바쁘게 굴러간다. 어떻해든 떠올리려고 하는 모양인데 잘 되지않아 보였다. 경은 취할때마다 이유없이 지코에게 찾아오는 걸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데, 어제라고 특별하게 기억할리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려다 끙끙거리는 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지코는 이내 피식 웃어버린다. 어서 먹던 것이나 마저 먹으라고 말한 뒤 지코는 경의 옆자리에 앉았다.
파이를 다먹고도 경은 제 아지트로 갈 생각이 없었다. 지코도 딱히 보낼 이유도 없었다. 덕분에 두사람은 나란히 멍하게 앉아 있을뿐이었다. 오랜만에 아무것도 없는 날이었다.
두사람 다 고요하고 한적한 것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심심하고 무료한 기분이 좀더 우세였다. 심심한 기분은 잡생각으로 이어졌고 어제 경이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두사람 사이에서 아예 생각지도 않던 대화의 소재가 불쑥 던져졌고, 생각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러자 지코는 소파에 몸을 최대한 기대고, 앉은것보단 누워있는 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순간 지코의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첫만남부터 제 사람 같은 건 있었지만, 한번도 그쪽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랜시간 함께 해서 미쳐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어제의 일로 지코의 생각회로가 연결된 모양이었다. 생각이 이어지자 지코는 아예 턱을 괴고 본격적으로 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경은 꽤나 자신의 취향으로 생겼다. 물론 자신은 조금 더 글래머한 몸매가 좋지만, 가는 허리가 어떤식으로 움직일지 작은 엉덩이를 움켜쥘때 어떤 소리를 낼지, 때때로 졸린듯 멍한 눈이 침대에서 어떻게 변할까하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구미가 돌았다.
혼자 생각을 마무리한 지코는 여전히 늘어진 경에게 물었다.
"우리 섹스나 할래?"
너무나 가벼워서,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던 경의 귀에는 지코가 마치 오늘 저녁메뉴를 말한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게 뭐지 무슨 음식이였지.경이 멈춘 머리를 느릿하게 굴리기 시작하자 서서히 단어의 뜻이 떠오른다. 천천히 탁한 눈에 생기가 돌더니 잠시후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지코를 똑바로 바라본다.
"돌았냐?"
경이 정색을 하며 몸을 틀었지만 앉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다지 도망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미 양팔로 경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은 지코의 행동이 용의주도했다. 경이 도망갈 길을 막은 지코는 경의 얼굴을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야 한번 하자. 나 잘해."
"지랄한다. 넌 나한테 꼴리냐?"
"어 존나."
한마디 할때마다 지코의 웃는 얼굴이 가까워져 간다고 생각했던 경은 마침내 지코의 입술이 제 입술에 닿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서둘러 닿은 도톰한 입술에 퍽 다정함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인지 지코를 밀어내려 들었던 손은 어정쩡하게도 어깨쯤에 멈춰있었고, 젖은 살끼리 마찰되는 끈적한 소리만 노을이 들이치는 아지트에 안에 가득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데 지코가 한번 마음 먹은 일에서 물러서는 것을 경은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전 입술이 맞부딪치기 직전 그의 눈에서 같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밀어낸다 하더라도 그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해내고 말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경 스스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쩐지 그와 입술이 닿는 순간, 꿈처럼 둥실 떠오른 어제밤 단편적인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누군가 자신에게 물었던 말이 떠올랐고, 비틀거리며 그에게 걸어가는 동안 누군가의 의문이 자신의 의문이 되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서 어제 내가 여길 처들어 갔던건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경을 지코가 눈치챘다. 집중하라는 듯 지코는 아프지 않게 경의 입술을 물었다가 놓았고 그제야 생각을 현재로 돌린 경은 자연스럽게 위에 올라탄 지코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내가 아래야? 왜?"
"...? 잘하냐고 물어봤잖아. 그럼 잘하는걸 보여줘야지."
경의 질문에 당연한 소리한다는 얼굴이 된 지코는 어느새 경의 셔츠 단추를 푸르고 있었다. 그런가? 잠깐 수긍했던 경은 무언가 생각 났는지 다시 그에게 물었다.
"너 다른 남자랑도 할때도 위야?"
지코는 누군가를 열렬하게 원해서 연인이니 하는 본격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가끔 타인과 몸을 섞을때도 있었지만 그런 일도 많지도 않았고, 크게 성별을 가리지 않았던 지코 성향은 안에서 그다지 특이한 취향은 아니었다. 숨길일도 아니라 경 또한 지코의 성향을 알고 있던터라 갑작스런 질문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이어지는 물음에 지코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
"넌 어떤데."
"난 남자랑은 안해봤는데."
어깨를 으쓱 한번 들었다 제자리로 돌린 경은 어느새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지코의 얼굴을 발견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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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잠든지도 몰랐던 경의 눈이 떠졌다. 두꺼운 커튼 틈으로 빛이 희미하게 세어 들어오는 것을 보던 경은 천천히 기억을 거꾸로 돌렸다. 눈을 감기 직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린순간 확 달아오르는 얼굴을 저도 모르게 감싸 쥐었다. 그러자 지금 이곳이 자신의 아지트가 아님을 눈치챘다. 자신의 공간 이외에 가장 익숙한 곳임을 깨달은 경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아직 깊이 잠이든 지코의 얼굴이 보였고 경은 자신도 모르게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잠든 얼굴 위로 어제밤의 얼굴이 나타났다. 처음 보는 표정과 눈빛으로 자신을 잡아 먹을듯 집요히 바라보던 어제의 지코가 떠오르자 경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다른 곳으로 피했다. 때마침 눈을 뜬 지코가 눈 앞의 경이 안절 부절 못하는 눈치라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리카락사이로 삐져나온 붉은 귀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
침대위에서 한참 꼼지락거리던 두사람은 어느새 잠이 들었고 다시 일어났을때는 오후가 된지 한참이었다. 밤에 일이 있어 먼저 움직여야하는 지코가 나가고 나서야 여기저기 온 몸이 나른한 기운이 가득한 경은 사람들이 모인 공터로 나갔다. 전전날 거한 술판을 벌였던 것을 모두 잊어버렸는지 또다시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경은 땅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만 이틀만에 나타난 경을 보고 사람들은 적당히 그에게 말을 건네며 그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사람들의 안부 인사와 우스갯소리를 적당히 받아치던 경은 그들이 건네주는 술을 받아 마시더니 결국 금세 취하고 말았다.
알콜이 불러온 들뜬 기분을 즐기고 있을때 문득 경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묘하게 신경쓰이는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이곳 사람들중 경이 모르는 이는 없기때문에 낯선 위화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신경쓰이는 그 사람을 잠시 인파 사이로 빤히 보던 경은 한참을 바라본 끝에 이틀전의 기억에 도착했다. 경의 끈질긴 시선을 눈치챈 남자가 경과 마주하자 그제야 경은 씽긋 웃었다. 그리고 그를 손짓으로 부르자 약속이나 한듯이 그의 시선을 따라 사람들의 눈길이 따라갔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비키면서 만들어진 길에 시선의 끝에 있던 남자가 당황하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길지않은 거리였지만 재빨리 움직이지않은 탓에 경의 앞에 남자가 섰을때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서있는 남자를 삐딱하게 올려다보던 경은 하품을 나른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야 경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번에 물어본거 말이지..."
"....."
남자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말이였던 터라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는듯 경은 또다시 손짓 하나로 그의 허리를 숙여 제 입 근처에 귀를 가져오게 했다. 다소 어색한 움직임으로 다가온 남자에게 경은 은근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어어엄청~ 잘하드라. 됐냐?"
말을 끝내는 동시에 피식 웃으며 남자의 몸을 탁 치며 밀어내는 경의 행동에 남자는 얼굴이 붉게 변해 있었다. 허둥지둥 자리를 피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경은 어느새 제 주위에 사람이 사라진걸 눈치챘다. 주변을 스윽 둘러보니 뭘하는건지 삼삼오오 모여 소리낮춰 떠들기 바빴다. 경은 이내 흥미를 잃고 타탁 소리를 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마시다만 술을 홀짝였다.
그날 이후, 두사람은 종종 몸을 섞었다. 그리고 전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였지만 더욱 특별한 관계가 된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